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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깜한 골목길에 가로등 하나가 켜져 있는 모습.

    이른 새벽, 내방이 가장 먼저 불을 밝힙니다.

    날이 밝기까지는 아직 더딘 이른 새벽, 내 방이 가장 먼저 불을 밝힙니다. 다른 때면 한밤중인 시간이건만 툭툭 아침잠을 떨치고 일어나는 요즘. 분명 어제와는 또 다른 나죠. 스무 살. 아직 모든 게 수줍고 철모르는 나는 늦깎이 고등학생입니다. "평소에 몇 시에 일어났어요? 학교 안 갈 때는?""학교 안 갈 때요? 오후에 일어나거나 아니면 오전 11시나 12시... ""그렇게 일어났어요.""콘프레이크 먹어."빈속으로 집을 나서는 건 아닌지 나의 등굣길을 함께 준비하는 또 한 사람. 이용학 목사님입니다."짝꿍 이름이 뭐냐? "이름 몰라요."매일 아침마다 반복되는 풍경! 집을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학교 가기란 한마디로 전쟁 같습니다. 늘 긴장감의 연속인 셈이죠!아침에 계속 전화가 오는 거예요? - 아니요. 알람요. 알람. - 알람을 왜 이렇게 많이 맞춰났어요? 여러 번 울리게 - 잘 못 깨가지구요. 잠을 좀 오래 자서 맞추어 놓는 거예요.

    제모습에 낯설기도...

    내가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준비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는 차로 40여분. 학교 통학버스를 타고 가야 하기 때문이죠.불과 1년 전만해도 꿈도 꾸지 못했던 지금의 내 모습. 저도 때론 제 모습에 낯설기도 합니다.제훈(가명) 학생, 아침에 걸어가면서 무슨 생각이 많이 들어요? - 그냥, 진짜 오랜만에 학교 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좀 학교 갈 때마다 힘들고, 3년 동안 잘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근데 잘 다녀야죠. 3년 동안. 올 해 처음 고등학교를 입학한 나. 다른 아이들처럼 똑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이건만 분명 남들과는 다른 나이기도 합니다. 이용학 목사님은 그런 내게 다시 펜을 잡게 해 준 고마운 분입니다. 이제 서로가 서로를 알게 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시간이 함께 하는 한, 늘 곁에서 함께할 아버지 같은 분입니다. 목사 "자기가 결심하기 까지 힘든 거지. 얘는 의지가 강한 애니까 잘 할거예요 "먼발치에서 항상 지켜보며 흐트러진 내 모습을 다잡아주시죠.

    나는 모르는 할머니 손에 이끌려 3살 무렵, 대구의 한 보육원에 맡겨졌습니다. 사춘기인 중학생 시절, 급기야 친구들과 가출하기에 이르렀고, 그때부터 나의 방황은 시작됐습니다. 내 보금자리로부터 5분 거리에 떨어진 한 어린이 집. 이용학 목사님 부부가 알뜰살뜰하게 운영해오고 있는 곳입니다. 평소 아이들에게 친절한 기사님으로 소문난 이용학 목사님. 운전대를 놓지 않는 데는 나름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목사 기사를 두면 150~200을 줘야 한다 구요. 그 돈 안 나가니까 청소년들한테 뒷바라지 해줄 수 있구요. 여유도 좀 생기고 누군가한테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계속 말할 수는 없는 거구요 차라리 자급자족해서 아이들 뒷바라지해서 키우자. 하루 종일 운전을 하다 보면 번거로움과 피곤함으로 물들기 마련. 더욱이나 한 쪽 손으로 하는 운전하기란 더 쉽진 않을 겁니다. 목사 사출기에 손이 끼어 버렸어요. 지금 오른 손이 부자연스럽고 다쳐버렸는 데 몇 번을 수술을 해도 회복이 안되고 결과적으로는 오른손을 절단하게 되었죠.

    그 때 내 나이가 16살 후반. 목사님의 지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린 나이에 힘든 고통을 이겨내고 지금 이 자리까지 일궈 오신걸 보면 존경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또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비슷한 또래의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까지 줄 곧 챙기며, 살펴보기도 하시죠. 내 몸도 온전치 않지만 남을 돌보는 그 마음. 목사님은 오래전부터 꿈꿔오셨다고 합니다. 목사 내가 맏이였고. 그 때 내 나이 13살. 초등학교 6학년 1학기때 가정이 완전 풍지박산이 난거 예요. 그래서 그 아픔을 누구보다도 내 스스로가 겪었고 내 친동생들이 친척집으로 헤쳐모여 하듯 흩어졌고 되었고 내가 크면 이런 어려운 일 당한 애들 있으면 도와줘야 겠다...그게 내 어렸을 때 꿈이었어요. 어느 덧, 새벽부터 분주히 서두른 하루가 오늘도 무탈히 끝이 났습니다. 다른 날이면 집으로 곧장 갈 테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꼭 들리는 곳이 있습니다.바로 보호 관찰솝니다. 저는 지금 소년원을 퇴원했지만 지난해 가을부터 보호관찰을 받고 있습니다. 1호 보호처분을 받고 꼬박 일 년을 보호관찰을 받아야 하는 나. 처음에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이마저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이른 새벽 등교하는 제훈 학생.

    오늘은 야간외출제한 음성녹음을 하는 날. 앞으로 10시이후 하루에 한 두 번씩 집으로 걸려오는 전화는 꼭 받아야만 합니다. 마치 창살 없는 감옥으로 보이겠지만, 분명 잘못을 한 죄 값을 치르는 거니까요. 아무쪼록 이 번 만큼은 잘 끝낼 수 있기를. 내 속의 마음을 한번 더 다잡습니다. 모두들 또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각. 나의 발걸음도 서둘러 집으로 향합니다.내가 쉴 곳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는 게 이리 행복한 건지 몰랐습니다. 여지껏 늘 나의 쉴 곳은 정처 없이 떠도는 길거리였으니까요. 동제(가명) 저 같은 경우는 어릴때부터 오고갈때가 없었잖아요. 이런데가 있으니까 맘 편히 잘 수도 있고, 맘 편히 오고갈 수 있고 집에 오고 싶을 때 와서 쉴수 있는 곳이 있잖아요. 그런게 정말 많이 좋아요. 이제 사고도 안칠 수 있잖아요. 집에 오면 곧장 메일부터 확인하는 나.기본 지식이 부족한 저를 위해 목사님께서 과외 봉사 선생님까지 붙여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습관이란게 있으니까...

    동제과외 선생님께서 네이버로 메일 보내주셔서요. 공부하라고요. 영어 공부 같은데요. 지금 하려고요. 지금 찾고 있어요. 남들에겐 평범한 일상이 어느날 보니 제겐 소망이 되어 버렸죠. 친구들도 사귀어 보고요. 3년 동안 열심히 산다는 걸 보여주려고 그런식으로 해서 검정고시보다 일반 학교를 나오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다니게 되었어요. 학교를 보내 놓고 나서도 목사님은 늘 곁에서 조마조마하시긴 마찬가진가 봅니다. 목사 순간순간 자기 스스로가 자유 분방하게 지냈던 것이... 사람들에게 습관이란게 있으니까 혹시라도 갑자기라도 돌출적인게 나오지 않을까 그게 제일 많이 염려 되구요. 내가 제훈이를 안지도 어느덧 2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대학원 동기들 사이에서도 이제 이제훈 이란 이름은 낯설지 않습니다. 내가 제훈이 일로 고민하거나 도움을 청할 때마다 기꺼이 도와준 친구들입니다. 이근영 옛날에 제훈이 옷이 필요해서 후원을 받았던 동진(가명)이랑 진형(가명)이랑 묻지도 않고 후원을 해줘서 되게 고마운 동생들이에요. 동기 쉽지 않은 일인데 계속적으로 할 마음이 있고 마음이 참 예뻤어요. 그 애를 케어 해주려고하는데 어떻게 하면 잘 해 줄 수 있을까 교수님께 질문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따뜻한 사랑을 가지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그들에게 힘을 얻곤 합니다. 제훈이를 아끼는 또 다른 이. 제훈이의 죄보다는 제훈이의 내면을 들여다 봐주신 저의 부모님입니다. 이제는 제훈이게도 아버지, 어머니인 분들이죠. 엄마제훈이가 여기 오면 누나누나 그러는데 우리를 부를 때 불편해서 엄마라고 불러라. 그랬더니 이제 엄마라고 하죠. - 여기 앉으면 불편해서요. - 어떠세요? - 좋죠. 엄마도 없는데 하지만 처음부터 아들로 여기기까지는 쉽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 느꼈던 편견처럼 부모님에게 소년원 아이들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 좋게 그려지진 않았습니다. 아마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나의 병마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릅니다. 나는 지금 면역체계 이상으로 생기는 루푸스라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늘 노심초사 할 수밖에 없죠.엄마 나갔다 오면 들어누워서 이 때부터 몸이 다 풀릴때가지 신경쓰고 하니까 꼼짝을 못하는 거예요. 다리 같은데가 다 터지고 왜냐면 얘가 신경쓰면 안되는데 제훈이 때문에 나름 많이 신경을 쓰니까 아프고... 처음에는 반대 를 많이 했었죠. 부모님의 만류에도 제훈이와의 인연을 쉽게 저버릴 수 없었던 이유는 단 하납니다. 이근영 서서히 사람들을 저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교제하고 만나게 되잖아요. 사람이 꼭 너가 생각하는 사람만 있지 않다는 거. 다 나쁘진 않다는 거를 지금 당장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조금씩 알게 되지 않을까... 자기가 느끼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있어요. 모처럼 일찍 수업이 끝난 오후. 서둘러 먼저 도착한 목사님께서 학교 앞에서 저를 기다리십니다. 마중까지 나오신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겠죠? 서둘러 우리가 함께 향하는 곳. 바로 서울의 한 법원으로 가는 길입니다.목사님과 내가 인연을 맺기까지 도와준 또 다른 분을 만나러 가는 중입니다.

    고마워요, 또 기특하다

    잔디밭에 무릎을 맞대고 모여앉아 있는 학생들

    바로 3년전 10호 처분과 함께 저를 서울소년원으로 보내주신 김정민 판사님입니다.제가 고등학교를 입학했다는 소식을 듣고 장학금까지 직접 전달해주신 판사님. 오고가는 수많은 아이들 중에서 저를 기억해준 것이 참 고마울 따름입니다. 제훈 제훈이는 얼마만에 보는 거예요? - 저번에 장학금 주시고... - 한 4개월? 정도 됐네요. 판사님은 당시 무거운 처분을 내렸다고 미안해 하셨지만, 오히려 저는 홀로 설수 있게 만든 가르침이라 여깁니다. 판사와 거의 10호 라고 생각도 했어요. 10호면 잘 됐다 뭐 좀 배우자.해서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어요. - 힘들진 않았어? - 예. 재미있었어요. 비록 남들보다 돌아서 이 길을 걸어왔지만 굳건히 이겨내리라는 판사님 뜻이 담긴 책 한권도 선물해 주셨습니다 모든 게 쉬운 건 없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격언처럼 인생에서 가장 고민이 많다는 지금. 나또한 이 힘겨운 시기를 딛고, 일어설 수 있겠죠? 저 역시 감사한 마음을 편지에 담았습니다.판사와 제훈 "꼭 성공해서 찾아뵐게요. 나 진짜로 이거 믿는다. " "어떤 애한테는 고등학교 1학년이 아무것도 아닌데 어렵게 된 거니까 그 자체가 감격스러운 거 같아요. " "한마디 하면? " "학교 열심히 잘 다닐 거구요. 꼭 성공해서 찾아뵐게요." "고마워요. 또 기특하다."언젠가 판사님 앞에 좋은 모습으로 다시 설 수 있기를 고대하며, 오늘 나눈 대화 한마디 한마디 늘 가슴에 새기며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소한 약속도 지키려고 했어요

    나는 매주 토요일마다 서울 소년원을 찾습니다. 이곳에서 제훈이와의 첫 인연을 시작으로 벌써 3년째를 맞았네요. 이근영 멘토 처음에 교회 선생님이 신앙 수련회 하니까 가자... 우리나라에 소년원 존재하는지도 몰랐어요. 그때 나이가 많았었는데도. .... 거의 끌려오다 시피 된거예요. 그 시절 그랬던 것처럼, 나는 또 다른 아이의 멘토로 활동중입니다.내가 소년원 아이들에게 나눌 수 있는 건, 그다지 특별한 게 없습니다. 그저 고민도 함께 이야기 하고 거리낌 없이 다가가는 것뿐이죠. 남들처럼 똑같은 색안경을 끼고 대한다면, 절대로 다가오지 않을 아이들임을 알기에, 새로운 만남은 늘 조심스럽고 신중하긴 마찬가집니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죠. 3년 전, 제훈이와의 첫 만남 역시 그러했으니까요.제훈 말도 없었어요. 저 혼자 고개 푹 숙이고 있었어요. 저는 아무것도 안먹고 근영 누나만 말만 하다 면회 끝나고 가고... 그런 식이었어요.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던 제훈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제훈이 맘속에 생긴 응어리를 하루 빨리 풀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제훈 어른 자체를 싫어했어요. 어릴 적부터 어른들한테 많이 마졌어요. 안좋은 말들도 많이 하고. 어른 들 자체를 무관심이라고 해야하나... 자체를 싫어했어요.

    그 후로 나는 주일마다 서울소년원을 찾았습니다. 눈조차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 제훈이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건, 우선 신뢰를 쌓는 일이었죠. 이근영 멘토 약속. 약속을 지켜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누나가 1주일 동안 편지를 매일 보내겠다는 하면 지켜려 하고... ...... 사소한 약속도 지키려고 했어요. 나의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진 걸까요? 열흘, 한 달, 두 달...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제훈이는 어느새 나와 함께 마주보며 웃고 있었습니다. 그 후로 제훈이와 나는 세상에서 가장 친한 남매가 되었습니다. 소년원에 입원할 당시, 중단했던 중학교 학업도 무사히 마친 후, 새로운 삶을 꿈꾸리라 믿었던 바람은 또 한번 내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죠. 제훈 소년원 나와서 보호관찰 6개월 끝냈는데 친구들하고 또 의왕에 있는 마트에서 또 훔쳐서요. 안양에 있는 분류심사원에 들어가게 됐어요. 제훈이한테 약속을 했었어요 . 한번만 더 이러면 너랑 나랑은 안만난다. 무너져 내렸지만 제가 가야할 거 같았어요. 제훈이 먼저 다가가야 할거 같았어요.그 후, 제훈이를 다시 만난 곳은 서울소년분류심사원이었습니다.

    이근영 저는 그걸 깨트려 주고 싶었어요. 꼭 보호자가 없다고 해서 소년원 들어오는게 아니다. (눈물...)그런거를 알려주고 싶어서 하느님한테 기도를 많이 했어요. 제가 발로 더 뛰고 간절했던거거고. 어떻게든 그게 목적이었어요. 문득 제훈이의 그른 행동이 혼자만의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홀로 남겨지면 상처에 상처가 덧나겠지만 하나, 둘 품은 울타리 속에서 지난 날 상처는 이제 무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제훈 가족 같은거죠. 어릴때부터 근영 누나가 친누나라고 생각하라고 하고. ........ 저는 가족이란게 하나도 없었잖아요. 근영 누나랑 근영 아버지 어머니가 그렇게 해주니 좋았어요.여러 울타리 속에서 제훈이가 이제 행복을 느끼고 세상과 부대끼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어김없이 또다시 시작된 하루. 일찍 일어나는 것이 여전히 고행이지만, 나는 꿋꿋하게 잘 버텨 나가고 있습니다. 하루, 이틀 갈수록 학교생활에 흥미도 느끼고, 일상 속에서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목사님도 여전히 저와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 나누고 계시죠. 내가 약속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제훈 엄청 힘들게 학교를 (다시) 다니고 있잖아요. 힘든 만큼 꼭 성공하고 무조건 학교도 졸업 한다구요... 비록 남들보다 늦은 지각인생이지만 나를 지켜봐주는 얼굴들을 떠올리며 내 인생의 천일의 기적을 이뤄 갈 겁니다. 나는 스무살. 고등학교 1학년 이제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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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매력적인

    음악학원으로 향하는 영현

    저녁 7시 영현(가명)의 분주한 발걸음이 음악학원으로 향합니다. 영현 지금은 많이 변했어요 그냥 즐거워요 배운다는 것도 즐겁고... 예전엔 몰랐는데 머리에 쏙쏙 들어와요 재미있어요 노래하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21살 박영현 그녀의 이야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스물 하나, 다시 꿈을 노래하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매력적인 박영현. 영현에게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과거가 있습니다.보컬강사 영현 처음 봤을 때에는 일단 원장님께 소년원에서 온 친구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대해야 할 지를 몰랐거든요 처음 봤을 때에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나쁜 인상은 아니였던 것 같아요. 소년원에 대한 편견이 깨지게 됐죠.영현을 보게 되면서 많이 접하고 수업을 하면서, 사적인 얘기를 많이 하게 되면서.더 많은 (편견이) 깨어지게 되었어요.영현과 보컬강사 " 진지하게 안 불러? 지금 장난치는 거야? 지금 웃으면서 네가 노래 어떻게 부르고 있다고 생각해 지금? 하나도 고쳐진 게 없어. 지난 시간이랑. 나아진 게 없어.노래 실력이 많이 줄어든 탓에 안타까운 선생님은 영현을 혼내기 일쑤입니다.

    너 가수하고 싶다며!

    영현과 보컬강사 노래하고 싶니? 얼만큼 하고 싶니? 노래하고 싶어? 이런 식으로 불러서 너 어떻게 할 거야? 나중에 너 음반 낼 수 있을 것 같아?이렇게 해선 데뷔 못해. 가수 못해 너. 너 가수 하고 싶다며..." 보컬강사 계속 공부를 했다면 아마 지금보다 훨씬 많은 발전이 있었겠죠.근데 학교를 쉬면서 학교를 그만두게 되면서 1년 정도 노래를 쉬었고 노래를 안 불렀던 게 지장이 있었던 것 같아요.왜냐하면 노래라는 게, 몸을 쓰고 성대를 쓰는 거라 조금만 쉬어주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게 되거든요. 그런데 쉬는 동안 감을 많이 잃어서 지금은 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죠. 시간 적으로도 아까운 면이 있고요 1년 전, 음악공부를 위해 대학에 입학했었던 영현 하지만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도 버거웠던 등록금 때문에 꿈을 뒤로 한 채, 학교를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영현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고, 그럴 땐 그냥 (학교를) 안 다니는 게 낫겠다 싶어서 그만뒀었어요.박영현의 멘토 김관진 원장 영현도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대야 하고, 부모님이 경제활동을 하셔야지(경제적으로) 문제가 없었을 텐데 일을 하시다가 아버지도 지금 병원에 계시고 어머니도 허리디스크 때문에 지금 일을 못하고 계시고.그 상황에서 저는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라고 봐요 2008년 당시 영현은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헤드폰을 쓰고 노래를 연습하는 영현

    친구와 영현의 대화 "야 박영현" "안녕, 거기서 뭐해, 여기서 뭐하냐구" "그냥 놀아" "학교는 잘나가, 어떡하려고 그래." "야 놀자" "안돼, 아빠 기다리고 계셔." "너 엄마, 아빠 때문에 그러지" "다음에 연락할게" "그래, 알았어. 다음에 연락해."어려운 집안형편 때문에 항상 노심초사하며 학교생활을 했던 영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습니다.아빠 왜 이렇게 늦었어? 배고파! 밥 좀 줘!"고된 일을 하다가 자리에 눕게 된 아버지. 집안은 나날이 어려워졌습니다.아빠와 영현의 대화. "그만 먹을래. 배불러." "아빠, 두 숟가락밖에 안 먹었자나. 얼른 더 먹어." "싫어. 배불러" "얼른 더 먹으라구" "아 싫다니까. 얼른 가서 네 엄마나 모시고 와." "엄마도 아파서 누워있어. 몇 번을 말해." "아파? 어디가 아파?" "허리디스크, 의사가 일 그만하랬는데 계속 하다가… 왜 자꾸 잊어버려" "그럼 어서 병원가야지. 엄마 얼른 모시고 와. 병원가게." "그냥 누워 있어. 아빠가 더 아프잖아." 아버지의 건강은 악화되기만 했고 어머니마저 허리디스크를 얻어 더 이상 일을 하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을 했지만

    외롭고 답답했던 영현이 유일하게 마음을 두었던 곳은 바로 친구들.얼떨결에 친구의 돈을 빼앗게 된 영현. 세상은 생각보다 만만했습니다.쉽게 얻은 돈으로 세상을 잠시 잊을수 있었습니다.그렇게 영현은 점점 죄책감을 잊었습니다.그런데 어느 날. 형사 " 쟤네들이니?"그렇게 소년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영현 저를 탓해야 했던 건데…저를 탓해야 하는 건데. 환경을 탓했어요.열심히 일을 했지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아버지와 어머니.영현은 이 모든 상황이 원망스럽기만 했습니다.영현 제가 제일 힘든 줄 알았죠.

    그때에는 분주히 면접을 보러 가는 영현 아르바이트 주인과 영현 "언제부터 일 가능하세요?" "저는 내일부터 바로 나올 수 있어요." "저희 매장은 근무시간이 12시간이에요." "12시간씩은 일하기가 조금 힘들 것 같아요"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영현에게 맞는 일자리는 많지 않습니다.영현 학교 다니면서 시간 날 때 하려고 하니까 그 시간대를 맞추기가 좀 어려운 것 같아요.이곳은 영현이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학교1년 전 영현의 멘토가 되어준 실용음악과 김관진 교수의 강의시간입니다.수업이 끝난 후 두 사람은 마주 앉습니다.그리고 진짜 수업이 시작됩니다.김관진 교수 화성학을 한 학기에 한 번만 배우는 게 아니고 화성학은 2년 내내 해야 해.그래야 네가 원하는 작곡을 할 수 있어.그것도 다 때가 있어.지금 아니면 그것도 못 배울 수가 있어.경제적인 문제로 대학을 포기했던 영현에게 다시 한번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김관진 멘토 영현의 꿈을 응원하고 조원해주는 진정한 영현의 편입니다. 영현(처음엔) 깐깐해 보였어요.하지만 지금은 정말 좋아요. 정말 좋아요.

    꿈을 위해 한 걸음씩 옮길 때 마다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는 영현

    김관진 교수(영현의) 첫 이미지가 그렇게 좋진 않았어요.제가 영현의 어릴 적 사진을 본 적이 있거든요.아주 예쁜 아이인데 지금의 모습과는 좀 다른 모습이어서'그런 모습을 좀 찾아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어요)영현에게 밝은 모습을 찾아주고 싶은 김관진 교수 단순 노래만 하는 가수가 아닌 자신의 모습을 담아낼 줄 아는 가수가 되고 싶은 영현을 위해 기타 수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이인호 영현이가 곡을 쓰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상처나 아픔을 노래와 음악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거든요.이 표현으로 음악적으로 대중들에게 호감을 준다면 가장 좋겠고 스스로 음악을 통해 (상처가) 치유되면 더욱 좋을 것 같아요. 나날이 실력이 늘어가는 영현 꿈을 위해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길 때 마다 그녀 안에 숨어있던 꿈들이 구체적으로 가지를 뻗어 갑니다.



    제가 배운 것을 다 알려주고 싶어요

    영현 다른 사람 노래 말고요. 제 이야기를 써서 제가 직접 (노래) 부르고 싶어요.김관진 '선생님 저는 저와 같이 힘든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주면 좋을 것 같아요' 그게 영현이 가장 처음에 솔직하게 해 준 이야기 중 하나였고, 힘들 수도 있지만 그런 모습들을 제가 더 많이 끌어내 줘야 하겠죠.1년 전 영현을 만났을 때엔 그 모습을 찾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자신의 정체성,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겠다는 이런 인식이 좀 많이 확고해진 상태에요.마침내 자신의 길을 찾은 영현 이제는 외로웠던 영현 곁에 위로의 음악과 함께 새로운 친구들까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영현 배우고 싶은데 못 배우는 사람들 있잖아요.제가 성공을 하면, 제가 배운 것을 다 알려주고 싶어요. (저와) 똑같이 가수로 성공한 후에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다시 나눠주고 싶은 영현 그 날을 위해 다시 꿈을 노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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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춘기 시절, 너는 행복했느냐

    실로폰을 연주하는 윤미

    나는 내게 자주 묻습니다. '사춘기 시절, 너는 행복했느냐'고... 어찌 보면 수치스럽고 돌아보기도 싫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그 시절의 아름다웠던 추억... 모두 한 번쯤 겪었을 10대 사춘기 시절의 고민과 방황... 그리고 그 안에서 찾은 희망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려 합니다. 혼자라 느꼈을 때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해 준 소중한 사람들과의 동행... 그들과 함께 나는 내일의 희망을 연주합니다. 내일의 희망을 연주하다. 2012년 2월의 어느 날 아침.인생의 시작인 20대 꽃다운 나이의 그녀.윤미(가명) 아침에 피곤해요. 근데 그때마다 '해이해지면 안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겨우 이것도 못하는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생각을 제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녀의 이름은 신윤미입니다.여기는 그녀의 멘토 이봉수 위원의 집. 윤미는 꼭두새벽부터 어디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걸까요? 바로 방학 동안 시작한 아르바이트 장소로 출근하는 길입니다.이봉수 위원 윤미 학생이 음악을 전공하고 있었고, 저는 개인적으로 음악을 굉장히 좋아해서 제가 자원을 했죠. 윤미 학생을 제가 맡겠다고... 그래서 인연이 됐죠...

    저는 정말 새로워요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녀의 출근길을 함께 동행해봤습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지하철 속에 그녀...윤미 저는 정말 새로워요. 솔직히 한번도 이렇게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신세계에요, 신세계. 사회생활이 뭔 줄 알았어요. 조금...다는 모르겠는데요. 조금 뭔가는 알 것 같아요. 보통 날을 살아가는 일상 속의 그녀가 도착한 곳은 그녀의 멘토 중 한명인 이재정 위원의 회사. 이곳에서 방학 동안 전화상담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윤미 아르바이트하면 돈이 남고, 공부를 하면 지식이 남고, 대학을 오니깐 학력이 남고, 완전 반대됐죠. 학교도 안 다니던 애가... 어느덧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큰 꿈을 꾸고 많은 기적을 이뤄내고 있는 윤미... 그 기적을 통해 조금씩 커가고 있는 그녀...(하지만 윤미의 도전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음악을 사랑하게 된 학생입니다.그 주 주말, 그녀가 오늘은 어디론가 이동 중입니다. 윤미는 강릉대학교 원주캠퍼스 음악학과에서 타악기를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방학 중이지만 연습할 곳이 마땅찮아 종종 학교를 방문해 연습도 하고,꿈같은 대학생활의 기운도 만끽합니다. 윤미 솔직히 말해서요. 나는 못하니깐 안 한다고 하잖아요. 못해서 안하는 게 아니고 안 해서 못하는 거예요. 근데 그걸 몰라요 그것만은 말해주고 싶어요.못해서 안하는 게 아니고 남들 하루에 10시간 공부할 때 놀 것 다 놀고 공부하니깐 당연히 못 붙지. 남들만큼만 하면 되요 진짜...작은 과거가 있습니다. 2년 전만해도(자막:안양소년원(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윤미는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에서 보호처분을 받고 입원한 학생이었습니다.윤미는 출생 후에 입양되었고, 양모가 4세 무렵 죽자 양부가 재혼을 하며 새로운 양모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각종 경시대회에서 상도 받고 학업성적도 좋았던 윤미.그러던 중 초등학교 5학년 때,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충격을 받게 됩니다.

    실로폰 연습을 하는 윤미

    그 후 윤미를 가장 아끼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부모님과의 사이도 틀어지게 되었습니다.윤미 엄마가 전교3등한 거 아님 성적 얘기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서 전교3등 딱하고 그 다음날 자퇴서 냈어요. 그녀는 방황과 비행의 길로 빠지게 되고 결국 소년원에 입원하게 됩니다.방황 전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학업 성취도가 높았던 윤미는 소년원에서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당당히 시험에 합격합니다.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그 후 윤미는 대학에 가고 싶다는 꿈이 생겼고, 열심히 활동하던 악대부에서 박승익 선생님, 맹완일 선생님의 지도와 김종준 과장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타악기를 전공해 음악대학으로 진학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됩니다.



    밑바닥이라고 하는 곳까지 왔는데...

    김종준(안산청소년비행예방센터 교육운영과 과장) 윤미 같은 경우는 그런 재능이 상당히 많이 있었고, 악대선생님이신 박승익 선생님도 '이 아이를 한번 (대학에)보내야 되겠다.'라고 말씀을 하시고, 그래서 윤미만의 공간을 만들어 줬었죠. 연습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주고 밖에 타악기 전공하시는 선생님들이 자원봉사로 해서 맹완일 선생님이라고, 그분이 와서 지속적으로 레슨을 해서 아마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했던가요..소년원 입원 당시 수능과 대학실기까지 치른 결과, 윤미는 국립대 관현악과에 합격하게 되고,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의 많은 도움과 소년보호교육정책자문단 희망나무 지원사업 및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꿈 같은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장기만(소년보호교육정책자문단 사무총장) 저희가 작년부터 희망 나무 사업을 자문단에서 시작을 하면서 (법무부)소년과로부터 아이들 장학금 지원하는 추천을 받았습니다.

    그때 윤미양이 들어가 있는걸 보고 저도 굉장히 깜짝 놀랐고, 얘를 도와주면 뭔가 또 대학도 열심히 다니고, 4년 뒤에 큰 보람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윤미 "저는 왕윤미입니다. 음악을 (공부)하고 싶다고 하니깐 지휘하셨던 박승익 선생님께서 도와주셔서 지금은 레슨도 받고 있고요. 여기서 밑바닥이라면 밑바닥이라고 하는 곳까지 왔는데 저는 여기서 꿈을 찾았습니다. 이 꿈 꼭 이루도록 하겠습니다.이곳은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 악대부. 윤미에게 희망의 날개를 만들어준 박승익 선생님과의 첫 만남도 이곳에서 이뤄졌습니다.박승익 선생님 음악을 얼마나 했느냐 했더니, 피아노도 할 만큼 했고, 피아노뿐만 아니라 바이올린도 좀 했더라고요. 일단 데려다가 피아노 테스트를 하고, 그 다음에는 피아노 보다는 타악기 쪽을 전공해라...머리가 비상합니다. 그리고 메모리, 외우는 게 상당히 빨라요. 지도해주시는 선생님도 이런 학생은 드물다, 이렇게 말씀하실 정도로 머리가 명석합니다.

    뒤돌아보면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실로폰 연습을 하는 윤미

    오랜만에 찾은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이제는 이곳의 모든 구석구석이사춘기 시절의 지나간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원장님과 윤미의 '꼴통 짓 많이 했죠 뭐' '그래. 지금 그걸 자연스럽게 얘기를 할 수 있잖아 마찬가지야. 윤미가 커서 뒤돌아보면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시절일거야. 부끄러운 게 아니고...'그녀의 흔적이 가장 많이 서려있는 곳은 뭐니 뭐니 해도 악대부가 아닐까요? 이곳에서 대학생의 윤미는 어떤 마음으로 다시 말렛을 잡고 있을까요..윤미 잘 풀렸어요, 이 안에서는요. 시험도 그렇고, 다 잘 풀렸어요. 시험 치면 다 붙었던 거 같아요.저 혼자 하고 싶다고 해서 과연 이만큼 해낼 수 있었을까요, 솔직히 불가능 아닐까요? 여기서 무슨 힘이 있다고요. 도와주시니깐...



    제가 배운 것을 다 알려주고 싶어요

    그녀 인생에 아름다운 선율을 선물한 수많은 멘토들...윤미를 누구보다 아끼기에 그들은 그녀가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박승익 대학생으로서의 본분을 지키고 자기가 열심히 공부하고, 또 봉사도 하고 그리고 여러분들한테 받은 은혜를 자기가 졸업 후에나 사회인이 되었을 때 그대로 환원할 수 있는 마음가짐, 그리고 항상 주변이 청결하고 정결하고 이런 학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는 하루하루 희망의 꿈을 꾸며 그 희망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고 싶어 합니다.윤미 저는 도와줄 수 있는 한 다 도와줄 거예요. 뭐 저랑 똑같은 길을 걷겠다고 하면 가르쳐 줄 것이고, 저도 그만한 능력이 된다면 저도 학비를 대줄 것이고, 제가 데리고 살 거예요. 하나의 원석이 최고의 보석이 되기 위해선 선생님들 만난 윤미 그 가치를 만들어주는 세공사의 손길이 중요합니다.그녀는 자신을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들어 준 이곳의 고마움을 감추고 살아가야 하는 걸 항상 마음 아파 합니다.

    윤미 정말 저는 여기가 뜻 깊은 곳이긴 한데요. 여기가 각별하고 자주 놀러오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그걸 수용을 못해줘요. 그렇다보니깐 저한테는 특별한데 아직까지는 '나 소년원 나온 사람이다' 내놓을 수가 없어요. 언젠가는 나중에 성공하면 그때는 말하겠죠. 나 소년원 갔다 왔다고, 근데 너네랑 똑같이 살고 있지 않느냐고. 편견 갖지 말라고, 그럴 것 같아요.며칠 뒤 윤미를 다시 찾았습니다.오늘은 윤미가 개강을 위해 기숙사로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네요. 어제와 다른 오늘...오늘과 다를 미래...인생의 또 다른 테이프를 끊는 윤미의 밝고 희망찬 미래가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그려지길 바래봅니다.이봉수 위원 그 친구는 음악교사가 되는 게 꿈이에요.지금의 어떤 상황, 또는 앞으로의 어떤 상황이 나타날지 몰라도 그 꿈만은 하루라도 있지 말라 하는 거예요. 거기에 대한 확신을 스스로 가졌으면 좋겠어. 꿈을 가져라 라는 얘기죠.에필로그불협화음 하나하나마다 음을 맞춰나갈 때,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오기 마련입니다.자신의 불협화음을 변화시켰던 윤미의 의지,그리고 그녀를 곁에서 지켜주던 많은 분들의 노력,그런 아름다운 하모니들이 그녀 앞으로의 인생에 눈부신 선율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잊지 마세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바로 지금 이 순간임을...

    자원봉사 미담사례 내일의 희망을 연주하다 자원봉사신청하기
  • 자원봉사 미담사례 난 두렵지 않아요 내겐 꿈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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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는 슬펐던 일들, 즐거웠던 일들...

    혼자 앉아 창밖을 보는 민수

    지금까지 1년 넘게 지내면서 많은 추억들이 쌓여진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제가 21년을 살면서 (소년원에서 보낸 시간이) 가장 값져요. 여기서 정말 많은 것을 얻고 가는 것 같아요. 난 두렵지 않아요. 내겐 꿈이 있거든요. 퇴원을 앞두고 있는 광주 소년원생 김민수(가명). 오늘은 민수에게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김은수 멘토의 " 살이 많이 빠졌구나. 머리가 길어서 더 그래 보여. 너를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거야." 1년 전, 민수의 멘토가 된 김은수 선생님. 일주일에 한 번씩 소년원에서 종이접기 봉사활동을 하며 민수에게 멘토링을 해주고 있는데요 민수의 미래를 함께 걱정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따뜻한 멘토입니다.

    난 꿈이 있어요

    매번 만날 때마다 미래 진로에 대해 이야기 하곤 하는데 그 때마다 새로운 것을 알려주시고 (저의) 꿈이 사회복지사다보니까 본받고 싶고, 김은수 멘토님을 존경해요. 생긴 것도 잘생기고 듬직하고 모든 것이 참 바람직하게 보였어요 그래서 '어떻게 저런 아이가 여기에 와 있을까?' 발전 가능성이 많이 있고 여기에 있으면서 여러 자격증을 따면서 성실하게 고졸 검정고시 과정까지 거치는 것을 보고, 부모가 있는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랐으면 크게 되었을 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복지사의 꿈을 품고 있는 듬직한 스무 살 청년. 늘 외롭게 자란 민수는 어린 시절 느꼈던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김은수 멘토에게서 어렴풋이 느껴봅니다.

    술에 취하면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아버지 밑에서 늘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곤 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을 온몸으로 막아낸 건 바로 어머니.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속에서도 언제나 민수를 지키려고 노력하며 늘 따뜻하게 품어주셨습니다. 넉넉지 못했던 형편에 아버지의 폭력까지.. 어머니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강렬하시고 조금 무서우신 분. 어머니는 저를 감싸주시고 따뜻했어요. 따뜻한 기억이 나고... 아버지 같은 경우, 술을 드시고 오시면 어머니에게 폭행. 저에게도 폭행. 이런 기억들밖에 없는 거예요.

    어머니가 보고 싶어요

    아버지를 용서하며 눈물 흘리는 민수

    아홉 살이 되던 해 어느 날. 어머니는 편지 한 장만을 남기고 민수와 아버지의 곁을 떠났습니다. 기댈 곳이라곤 어머니의 품 밖에 없었던 민수. 갑작스런 어머니와의 이별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셨어요 그냥 아버지 단어가 떠오르면 아버지는 정말 싫었어요.아버지는 정말 싫고, 어머니는 보고 싶은데 그 이후로 한 번도 못 뵀어요. 어머니가 저를 찾아오신 것도 아니고 제가 (어머니를) 찾아 가지도 않았고요. 아버지가 저를 키워주고 있었는데 제가 못 견디고 가출을 한 거죠.집을 나오긴 했지만 갈 곳이 없었습니다. 야채가게 소파에 앉아있는데 야채가게 아저씨가 저 집나온 건 아셨나봐요 매일 그 자리에 있으니까. 먹을 것도 사다 주시고 저녁도 챙겨주시고 같이 야채가게 안에서 밥도 먹어본 기억이 있고. 그러면서 소개로 양어머니에게 가게 됐어요.




    너 한번 어머니한테 가볼래?

    그렇게 민수는 양부모님을 만나 유년시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양어머니가 어느 날 말씀하셨어요. "너 한번 (친)어머니한테 한번 가볼래? " 전 엄마니까 너무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친)어머니가 양어머니한테 이런 말을 하셨대요. "아파트 한 채 해주면 아들 데려다 키우겠다." 본인의 친자식인데.. 양어머니한테 (그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제가 너무 충격을 받았었어요.아들과의 만남을 외면했던 어머니.너무나 그리웠던 어머니였기에 원망도 컸습니다. 어머니는 2010년 2월에 돌아가셨어요. (양부모님에게서) 독립을 하고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세무서에서 재산이 상속됐다는 (우편물이) 와 있었어요. 2010년 2월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재산이에요. 그게 아파트라고 되어 있었어요. 분명히 양어머니에게는 '아파트를 물려주면 자기가 (아들을) 데려다 키우겠다.' 이러하신 어머니였는데 아파트를 남기고 가신 어머니잖아요.그 사실이 너무 슬프더라고요. (과거) 상황에서는 제가 생각했을 때 저를 키울 입장은 안 되셨던 것 같아요. 그때 당시의 힘든 마음에 저를 (외면) 하셨을 뿐이지.. 진심으로 하신 말씀은 아니셨을 거예요.마지막까지 아들을 생각했던 어머니. 이제야 어머니의 진심을 알게 됐지만 이젠 만날 수가 없습니다. 청년이 된 이후, 양부모님에게서 독립한 민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생활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손님과 민수의 "여기 화장실이 어딘가요?" "화장실 저 쪽입니다"열심히 일을 하는 것보다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어리석은 생각이 민수를 비행의 길로 몰아넣었습니다.이후 반복되는 비행.날이 갈수록 죄책감마저 무뎌졌습니다. 서울 소년원에 들어가게 됐어요. 처음에는 열다섯 살 이라는 나이에.그때는 저의 가치관과 중심이 잡히지 않았었어요. 밥 주면 밥 먹고, 로봇처럼 저의 가치관 없이 생활했었는데 뉘우침 없이 소년원 생활을 하게 된 민수는 이 모든 상황이 억울하고 불만스럽기만 했습니다 두 번째로 들어가게 된 광주 소년원. 그 사이 민수는 두 번째 양아버지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던 민수는 자신에게 진심으로 따뜻하게 대해주던 김오열 목사에게도 마음 문을 쉽게 열지 못했습니다.민수의 "편지, 그만 보내세요. 읽고 싶지 않아요. 가세요."민수 개별실 신세를 지는 날도 많았습니다.하루 이틀은 그냥 멍하게 지냈어요. 내가 (개별실에) 왜 들어왔는지도 모르고'내가 뭘 잘못해서 들어왔지?' 이런 죄의식이 아예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양아버지에게서 편지가 왔어요. 아무생각 없이 읽게 된 한 통의 편지. 민수 저희 아버지가 아닌데 제 아버지가 아니에요. 그런데 그 편지를 통해 '내가 너를 아들처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이 말씀을 하시더라고요.정말 아버지 같아요. 저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지금은 이제 성년이 돼서 21살이 되어서 (친)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어요. 근데 성년되기 전에는 '아 이분이 내 (친)아버지 였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목사님 옆에서 더 잘 도와주고 챙겨주고 그랬으면 안 들어갔을 텐데 미안하다. 내가 자주 편지하고 면회 갈게. 그래서 네가 그 안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편지에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 했어요.

    그 날은 (편지를) 보고 계속 울었어요. 울면서 그 편지를 몇 번 읽었는지 몰라요.다섯 시에 일어나서 다 씻고 그 조그만 방인데 청소를 다 한 거예요. 청소를 다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 했어요 미안하다. 내가 미안했다.." (이 부분 천천히)친아버지에게 들어야 했던 그 한 마디를 양아버지에게 듣는 순간,함부로 살아왔던 자신의 삶이 반성되면서 마음속 미움까지 녹아내렸습니다. 민수 그런 과거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은 저 가슴 속에 있긴 있지만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안 좋은 기억들) 없애려고 노력하고..없어요 그냥. 없고. 그냥 보고 싶어요. 어머니 아버지시니까.모든 게 아버지 탓이라고 생각했던 날들.그리움이 원망이 되었던 날들..이젠 모든 걸 용서하고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단단히 마음을 잡은 민수.전에 없던 새로운 마음들이 생겼습니다.퇴원 전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도 했습니다.민수 여기서 취득할 수 있는 모든 자격증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열심히 해봤어요 그랬더니 저에게 걸맞지 않은 모범상을 받은 거예요 장학금 추천도 받아서, 장학금도 받고, 자격증을 취득함으로써 선생님들께도 인정받고...그렇게 하다가 꿈도 발견하고. 많은 걸 이룬 것 같아요. 민수의 변화는 반 동료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맏형으로 모범을 보였더니 결국 민수네 반은 모범반으로 선정되기까지 했습니다.동료1 민수형이 없었으면, 저희 교실 이미지도 많이 안 좋았을 텐데 모범반 상장도 받고 동료2 소년원에서 진짜 민수형만큼만 됐으면 소원이 없을 정도로 그 정도로 진짜 본받고 싶습니다.일 년 동안 함께해온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민수.늘 잘했다 칭찬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고마운 은사님입니다.한영관 선생님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내색하지 않고 목표하는 것을 도전하여 성취하는 학생입니다. 여기서 생활하는 동안 독서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기보다 나이 어린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학생입니다.며칠 뒤,퇴원을 앞둔 민수가 사회생활의 빠른 적응을 위해 통근취업을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종이상자를 만드는 공장. 민수는 그동안 마음속으로만 해왔던 사회를 향한 힘찬 날개짓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오늘도 민수는 힘을 내어봅니다. 오늘 하루가 내일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정말 행복하게 오늘 진짜 멋지게 잘 해냈다, 그런 생각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김오열 목사 자기 진로에 대해서 열심히 더 나와서 성실하게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무엇보다 사람한테 인정받는 신뢰성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민수가 그렇게 할 거라고 믿습니다. 슬픈 일, 고통스러웠던 일은 모두 다 잊고 즐겁고 재미있는 기억만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갈 생각입니다.민수 청소년시기의 5년은.. 지금까지 고통스러웠어요. 그 고통스러움 속에서도 자유스럽지 못했지만..그 고통 속에 배움도 크고. 얻어진 것도. 좋은 추억도 많아요.나중에 떳떳하게 돼서.. 어머니 산소 찾아 봬서.. 그때 한을 풀어야죠. 처음 아들 찾아왔다고. 보고 싶어도 못 보는데... 보고 싶고요. 사랑합니다.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실 그리운 엄마를 위해...그리고 자신을 변화시켰던 따뜻한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민수는 누군가의 희망의 통로가 되려 합니다.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내게는 꿈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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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원봉사 미담사례 마음과 마음이 만나야 작은 기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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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과 마음이 만나야

    의자에 앉아 강의를 듣고 있는 민국

    서울 금오동에 위치한 청소년 문화의 집. 이곳에서는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직업훈련 프로그램에 참여 하고 있다.하지만 유독 진지한 모습으로 강의를 경청하고 있는 한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교육에 참가하는 앳띤 민국(가명)이 올해 17살인 민국이는 또래 아이들과 달리 좀 더 일찍 사회로의 힘찬 첫발을 내딛고 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야 작은 기적이 시작 된다. (서울동부, 이민국/17세) 김충원 보호관찰관 다른 아이들도 다 그렇지만 민국이도 잔뜩 얼어 있었고요 그 날 어머님과 같이 왔는데 어머님하고도 사이가 별로 안 좋은거 같더라고요 이렇게 말하는 것 보면,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물론 저하고는 더할 나위 없었고요 그런데 몇 마디 해보니까 속 마음은 착한 아이구나 쉽진 않겠지만 아이하고 친해질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의 벽을 허물 수 있는

    2011년 민국이는 특수 절도로 2년의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다. 유년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할머니와 함께 살던 민국이는 2005년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할머니와의 생활이 어려워 어머니가 양육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로 인한 갈등이 심화 되어 방황과 비행을 반복해 고등학교를 중퇴하게 되었다.그런 상황들이 민국이를 집보다는 밖으로 나돌게 하였고 비행과 범죄로 이어지는 잘못된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김충원 보호관찰관 부모님이 일찍 이혼을 하셔서 할머니하고만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었거든요 그리고 나중에 어머님하고 재결합을 했는데, 너무나 그 떨어진 시간들이 길었으니까요 아이는 아이대로 힘들었을 것 같고,또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힘드셨겠죠 그런 와중에 저를 만난거였어요. 그런 상황에서 보호관찰을 하는거 였으니까 누군가 마음의 벽을 허물 수 있는 돌파구가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김충원 계장은 여러 단체와 기관을 수소문 한 끝에 범죄예방위원 서울동부지역협의회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었다.노기명 범죄예방위원 범죄예방위원으로 우리 관내에 약 400명이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보호관찰 대상자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학생들의 어려운 생활을 보면서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학생들을 위해서 지원을 할 것인가 이런 많은 생각들을 위원들끼리 합니다.

    2011년 8월 범죄예방위원 서울동부지역협의회와 보호관찰소에서는 부모와 보호관찰 청소년이 함께하는 가족캠프를 기획하였다. 오랜 시간 동안 가족간의 대화가 단절된 민국이와 어머니 역시 관계 회복을 위해 이 캠프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이 캠프는 강제적이거나 강압적인 분위기가 아닌 부모와 대상자가 1박 2일 동안 함께 자고 함께 생활 하며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구성 되었다. 처음에는 서먹해 하던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융화가 되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캠프담당자대부분 현대 사회에서 대두되는 아버지와 어머니, 자식 간에 문제가 있는 가정이라던지 지금까지 캠프를 많이 진행을 해왔습니다. (민국이 역시) 처음와서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것 자체도 어색해하고 선생님들과 같이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같이 앉아 있는 것 자체도 어색해하는 표정이 많았었어요. 저희 쪽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얼굴도 좀 밝아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굉장히 기억에 남는 친구였던 것 같습니다. 민국이와 민국이 어머니 또한 다른 대상자들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벽을 하나씩 허물고 있었다.

    김유진 상담사와 프로그램 활동을 하고있는 민국

    캠프에서의 시간이 흐를수록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민국이의 밝은 모습과 웃는 얼굴이 늘어가고 있었다. 그런 민국이를 바라보는 김충원 계장의 시선도 단순한 대상자가 아닌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민국이 어머니 집에서는 대화도 자주 안 했었고, 마음의 문도 닫혀 있었는데 캠프를 하고 나서 속에 있는 얘기도 많이 나누게 되고 조금씩 마음의 문이 열려서 너무 좋고요 동생도 많이 생각을 하고, 전에는 가족에 대해서 전혀 신경도 잘 안 쓰고 엄마한테 많이 반항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엄마가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노기명 범죄예방위원 (서울동부지역협의회에서는) 대상자들 중에서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보호관찰소와 함께 검정고시반을 보호관찰소에 열었습니다.


    바리스타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대상자들이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도록 경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지원 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민국이는 범죄예방위원 서울동부지역협의회의 도움으로 2011년 말부터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라 평소에 관심 있어 하던 바리스타 교육도 병행을 하고 있다. 노동부 고용지원센터와 연계한 취업패키지프로그램이 그것이다. 김유진 상담사 민국이 같은 경우는 커피 바리스타 과정을 원하고요, 학원으로 연계를 하려고 대기 중입니다. 그 다음에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 직종을 발견하면서 본인이 원하는 학원이나 인턴 교육이나 아니면, 디딤돌 일자리 같이 한 번 경험해 볼 수 있는 실습생 과정을 거치고요 최종적으로는 그런 직종으로 취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취업성공패키지 입니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은 남보다 훨씬 커다란 성취를 이룰 수가 있다. 검정고시와 바리스타 라는 목표를 가진 민국이는 이제 예전에 특수절도를 저지르던 민국이가 아닌 것이다.

    민국이 엄마랑 가족캠프 가기전에는 말도 안하고 서먹서먹 했었는데요 가족캠프를 갔다 온 이후로는 엄마가 편해지고 좀 더 같이 있는 시간도 많아지고 그리고 보호관찰 선생님께서도 진심으로 저에 대해서 말해주시니까 저도 그거에 감사하다고 생각 많이 했어요 일단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 검정고시부터 꼭 합격을 하고 바리스타 학원 다니면서 자격증 따서 멋있는 바리스타가 되고 싶어요 김충원 계장 여러가지 만 가지 프로그램을 저희가 갖추고 있더라도 아이의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저의 마음하고 아이의 마음하고 마음과 마음이 만날 때여야만 비로소 작은 기적이 시작 될 수 있다는 걸 느꼈죠.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과 지도기법이 있어도 서로간의 신뢰가 없다면 그것들은 무용지물이 된다. 대상자와 범죄예방위원, 그리고 보호관찰관이 서로를 신뢰할 때 (대상자의)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된다.마음과 마음이 서로 만나는 그때 작은 기적은 이미 시작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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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원봉사 미담사례 믿음으로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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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일을 배우고 있는 조태호씨

    조태호 (가명, 47세)2011년 5월 23일 포항 전자발찌 부착이 확정 되어 조태호씨 집에 찾아간 이정희 계장은 뜻밖의 상황에 당황해 했다.전자발찌를 채우며 준수사항을 이야기 하는 동안에도 그의 강한 불만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이정희계장 답답했죠. 앞으로 5년동안 보호관찰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막막했고,새로운 접근방법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믿음으로 만드는 세상(포항, 이정희 계장)이정희 계장은 우선 그가 처한 주변 상황을 알아야 그에게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조태호씨는 성폭행 범죄로 10년이라는 긴 징역 생활을 보내고 3년 전 출소 하였지만 변변한 직장도 없이 노모 그리고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처와 함께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고 있었다.무엇보다 경제적으로 힘든 그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안정된 직장이었다.조태호씨를 돕기 위한 그의 분주한 일상이 시작 되었다.여러 곳을 찾아 도움을 청하였다.이정희계장 전자발찌 대상자를 이해해주고 직장을 마련해 주실수 있는 분이 필요했습니다.그 때 생각난 분이 이석호 범죄예방위원이셨습니다.

    모든것이 절망적이었어요

    산업 기계 및 철골을 제작하는 포항 지역 중견 기업으로 다름 아닌 이석호 범죄예방위원이 경영하는 회사이다.주5일 근무, 초봉이 200만원이 넘는 근무 조건에, 한달 만 견습공으로 일하면 정식 직원으로 채용 되는 조건은 조태호씨에게 찾아온 최고의 기회였다.이석호 위원님 직원들은 아무도 몰랐습니다.공장장에게만 특별하게 이런 친구(대상자)라고 말을 했습니다. (조태호씨가) 열심히 참 잘하더라고요.조태호씨는 뜻밖의 취직에 감사해 하며 전자발찌에 대한 불만도 많이 누그러진 듯 했다.그런 그를 보기 위해 찾은 회사에서 면담 내내 직장 생활에 만족 하는 듯 그의 표정은 연신 밝아 보였다.모든 게 순조롭게 이루어져 가는 듯 했다.이석호 위원님 친한 지인이 교통사고로 죽었더라고요.술기운에 실수를 한거죠. 사람이 술을 마시면, 한잔씩 먹다보니 그 날 저녁에 실수를 한거죠.근무한지 한달 만인 7월 21일 밤.만취한 그는 전자발찌를 자르고 출동한 보호관찰소 직원과 경찰에게 욕설을 퍼 부으며 긴급 구인 되어 교도소에 수감 되었다.그에게 1심에서 징역 6월이 선고되었다.모든 것이 절망적이었다.이정희계장 담당자로서 공든 탑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죠.제가 지금까지 한 모든 것이 헛수고인 듯도 했고요.이석호 위원님 (조태호씨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줬는데 저도 그 때 당시에는 내가 착각 한 것은 아닌가 했습니다.

    기계를 수리하고 있는 조태호씨

    이석호 범죄예방위원과 이정희계장의 교도소 면회, 그를 걱정하는 동료직원들과 면회가 끊이지 않았고,그는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회개의 눈물을 보였다.이석호 위원님 (교도소에) 가서도 안타까워서 제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아는 변호사를 통해서 물어보기도 하고,탄원서도 만들어서 직원들에게 협조도 구하고전 직원이 분주해 지기 시작했다.모든 직원이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 하기 위해 하나가 되었다.모두가 노력한 결과 항소심에서 벌금 800만원을 받고 출소 하였고 조태호씨는 다시 찾아온 기회에 감사하며 더욱 열심히 노력하였다.그리고 지난 12월 8일 그에게 뜻 깊은 날이 찾아 왔다.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어 새로운 삶이 열린 것이다.이정희계장 보호관찰을 집행하면서 힘든 점들도 많았지만,보호관찰은 대상자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 된다고 생각 했습니다.

    믿음에서 비로소 시작된다고

    대상자들이 우리와 함께 생활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석호 범죄예방위원님처럼 이들이 사회일원이 될 수 있도록 믿음과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는 것이 가장 중요 하다고 생각됩니다.이석호 위원님 토요일에 무조건 쉬는데(조태호씨가) 정말 열심히 해보고 싶으니까 휴일에도 일을 하게끔 해달라 좋다 그러면 한번 해봐라고 했습니다.그래서 자기 혼자 나와서 일하곤 했습니다.급여도 첫달에는 한달이 다 안되기 때문에 조금 적었습니다.그래서 제가 보조도 조금 해주고 아직까지는 제가 100퍼센트라고 말씀 못 드리지만,제가 봐서는 70~80퍼센트 정도는 정화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비록 과거에 죄를 지었지만 사람들의 격려와 믿음 속에서 건전한 사회인으로 더불어 사는 사회!!우리 모두가 바라는 미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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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원봉사 미담사례 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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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발걸음이 오늘따라 무거워 보인다

    밥상 앞에 앉아있는 민정과 할머니

    범죄예방위원 경주지역협의회..이곳에서 오늘 "아름다운 동행" 장학금 전달식이 치러진다. 비록 많은 돈이 전달되지는 않지만 정말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작은 온정의 손길이다. 6개월 전부터 민정(가명)이의 힘든 삶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이 장학금을 받고 있다. 아름다운 동행 (경주, 이민정 / 15세)포항 역 근처의 작은 단칸방 오늘도 불만 가득한 민정이와 할머니의 실랑이가 시작 된다. 할머니와 민정이의 "다 그걸 왜 넣는데 거기에." " 먹으면 어떻게 해" " 안먹는다" 민정이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산다. 민정이 부모님이 서로간의 성격차이로 인한 많은 싸움으로 인해 이혼을 한 뒤, 부득이하게 민정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맡겨진 것이다. 어쩌면 부모님의 갈등과 이별이 민정이의 방황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결손가정.. 민정이와 같은 아이들에게 커다란 상처가 되는 단어이다. 그의 발걸음이 오늘따라 유독 무거워 보인다.

    부모님을 그리워 하지만

    2011년 4월.민정이는 친구들을 폭행하여 법원으로부터 2년 간의 보호관찰처분을 받았다. 윤봉한 주임은 여느 아이와 다른 민정이의 첫 모습에 많이 놀랐다.민정이저 보호관찰 받으러 왔는데요. 윤봉한 주임 처음 민정이는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약간은 불량한 복장으로 면담에 임했습니다. 민정이랑 이런 저런 질문과 대답을 하던 중에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게 왠지 부모님들이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은근히 목소리가 갈라지고 "잘 모르겠습니다"라는 대답으로 일관하더라고요. 민정이와 같은 결손 가정의 아이들은 근로능력이 미약한 조부모님의 영향을 받게 되어 경제적으로 힘든 생활을 보내기 마련이다. 민정이도 그런 상황에서 투정과 반항이 점차 심해지며 할머니와의 소통이 단절 되었다. 그로 인해 민정이는 조부모님에게 자신을 맡긴 부모님을 그리워하게 되지만 그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한 원망이 되어 반항적인 행동으로 표출이 되었다. 윤봉한 주임은 민정이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수소문 끝에 범죄예방위원 경주지역협의회에서 실시하는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장학 프로그램에 민정이를 추천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민정이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장학금 혜택이 주어지는 것이라 힘든 민정이와 할머니의 생활에 큰 힘이 되는 온정의 손길이었다. 김정석 경주지역협의회 운영실장 아름다운 동행은 2004년 7월에 처음 시작을 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비행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가정 환경이 어려운 경우가 많죠. 적지만 매월 10만원씩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 까지 지원을 하자 이런 계기로 시작을 했습니다. 그래서 가정 환경 실태를 파악을 하고, 상담을 통해서 여러가지 다른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 주거 환경이 열악하면 집 수리 지원을 병행을 하고, 이렇게 종합적인 다양한 지원을 현재까지 하고 있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민정이의 마음의 치료는 쉽게 되지가 않았다. 부모의 차가운 외면, 사회에서 받는 따가운 시선에 15살 민정의 마음의 상처는 더욱 깊어만 갔다.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윤봉한 주임은 범죄예방위원 경주지역협의회의 추천으로 경주 아동발달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방 안에 홀로 앉아 있는 민정

    그 후 민정이는 경주 아동발달센터 김인옥 센터장과 매주 만나 상담 및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 김인옥 센터장과 민정이의 "기분 좋은 말부터 한번 적어볼까?" "내가 잘못 안 했는데 전부 다 내 탓이죠" "예를 들면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지?" "사고 터졌잖아요? 유리창이 깨졌던지, 그럼 일단 나부터 뭐라해요." "진짜 억울하지? 그때 선생님한테 뭐라고 얘기한 적은 없어?" "내가 안했다 했죠" "선생님의 반응은?" "니가 한거 다 안다면서 나한테 자꾸 뭐라 해요."김인옥 센터장 처음에 왔을 경우에 가족에 대한 화나, 주변 사람들에 대한 화, 자신에[ 대한 좌절감 등이 첫 회기에서는 많이 보였어요. 그리고 학교에서는 항상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을 했고요. 혼자 생활을 하는 친구들이나, 한 부모 가정 자녀 같은 경우에는 어쩌다가 실수를 하게 되면 한국 사회에서는, 주변의 시선이 엄마가 안 계시니까 하며 안좋은 시선을 가지고 있는데요. 칭찬을 해주시면 아이들이 많은 변화가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건전한 사회인으로 더불어 사는 사회

    상담이 진행 될수록 마음을 열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한발자국씩 다가가고 있었다. 부정적이고 사회에 반항적이던 민정이의 모습에 웃음이 피어나기 시작했다.그리고 할머니가 걱정하던 민정의 미래를 위해 중학교 검정고시를 준비 시키고 있다. 주식회사 에듀윌의 지원을 받아 인터넷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하였고, 범죄예방위원들을 통해 필요한 참고서 등을 지원 하고 있다. 윤봉한 주임 사실 제가 민정이를 도와준 부분은 아주 작은 부분인데 오히려 민정이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셨던 범죄예방위원들과 민정이의 마음을 많이 만져 주신 아동발달센터 원장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 또 오히려 제가 이분들에게 많이 감사하는 마음이 들고 그러니까 오히려 더 마음이 뿌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깊은 관심과 온정의 손길로 소극적이고 반항적이던 민정이 삶의 변화.자칫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의 깊은 수렁에 하염없이 빠질 수도 있었지만 그의 손을 잡아준 많은 이들로 인하여 새로운 삶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그리고 찾아온 13살의 꿈.그것은 다름아닌 가수이다 오늘도 TV속 가수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신을 표현하는 가수.그것은 외로웠던 스스로가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민정이의 깊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민정이저는 가수 되고 싶어요. 가수는 멋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꼭 가수 될꺼예요!!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민정이의 미래를 그 누가 장담할 것인가.. 보호관찰은 보호관찰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 각 계층의 연계를 통해 물질적, 정신적인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대상자에게 전달이 될 때 진정한 보호관찰이 실현이 되는 것이다."아름다운 동행" 그것은 어둠 속 한줄기 빛과 같은 따뜻한 손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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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원봉사 미담사례 쌤! 보호관찰 더 받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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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힘이 되어주는...

    홀로 눈길을 걸어가는 기봉

    2009년 8월 여느 때처럼 보호관찰소에 출석하는 기봉(15세)이. 그의 표정은 밝게 웃고 있었다. 그런 기봉이가 머뭇거리면서 고기영 계장에게 말한 한마디의 말. 고기영 계장보호관찰이 그 애가(기봉이) 2010년 10월에 끝나거든요. 2010년 8월 18일에 보호관찰을 더 받고 싶다. 공범 중에 한 명은 보호관찰을 더 받고 싶다고 얘기를 해서, 그런 (좋은) 케이스가 되고, 또 한 명은 그것하고 정반대 소년원 가는 처벌을 받게되서 그 날을 제가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처럼 언제나 힘이 되어주는 고기영계장! 그 둘의 특별한 인연은 2008년부터 시작되었다. 쌤! 보호관찰 더 받고 싶어요 (강릉, 고기봉/18세) 2008년 10월 폭행 혐의로 강릉지원에서 보호관찰 2년 처분을 받은 기봉이 당시 기봉이는 장애인 어머니와 남동생 세 식구가 조그마한 원룸에 살고 있었다.


    밤낮으로 고된 노력이 시작되어

    보호자의 통제력이 미약하여 기봉이의 집은 언제나 주위 나쁜 친구들과 함께 술과 담배를 피며 그들이 아지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고기영 계장 기봉이네 집에 갔는데 공범과 불량 교우들이 정말 많았어요. 안에서 담배 피고 밤새 게임하고 그러더라고요. 사실상 그 집이 아지트화가 되어있었어요. 기봉이를 어머니 혼자 키우시다 보니까 잘 안되는 거죠. 그래서 애들이 와서 담배피고 게임하고 그랬던 거죠. 그런 친구들과 격리시키는게 가장 급선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수시로 (기봉이네) 집에 갔습니다. 아침에 가고, 오후에 가고, 그러면 여지없이 다들 같이 있거든요. 그러면 다들 귀가 시키곤 했죠. 그런 부분들이 가장 처음 시작이었고요. 하지만 기봉이의 생활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그날 이후 밤낮으로 그의 고된 노력이 시작되었다. 주거지 및 자주 가는 동네 피시방을 돌며. 지도 감독하기 시작하였으며, 담임교사와의 멘토링을 체결하여 학교생활도 병행 지도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하나씩 일을 진행해 나아갔다. 하지만 기봉이의 힘든 생활 환경을 쉽게 바꿀 수는 없었다.기봉이 아버지의 술에 찌든 생활과 상습적인 폭행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갔고, 결국 주위의 도움으로 강제 격리조치 되었다.기봉의 어머니도 몸이 불편한 3급 장애인으로 경제활동이 어려워 여러 가지 지원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기봉이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하여 범죄예방위원 강릉지역협의회에서 장학금 및 생계비, 의료비등을 지원하기로 했다.강릉지역협의회 회장 김연익 매년 40명 정도의 관내 중,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회당 50만원, 18회 가량 장학금을 지급해 왔습니다.

    펼쳐진 책 위로 보이는 펜을 쥔 경민의 손

    수혜 대상자가 약 500명정도 되고요, 학생들이 성장기에 얻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금전적으로 해결해주고 그 학생들에게 멘토링을 통해서 저희로서는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서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가정에서 받은 정신적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기봉이의 아픈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 범죄예방위원 강릉지역협의회에서는 강릉동인병원에 도움을 요청하였다.미술 치료 및 심리 치료 등 다양한 전문 프로그램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 기봉이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 지고 있었다.담당전문의 아버지가 술 문제가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어머니를 때리거나 기봉이에게 욕설을 하곤 했습니다. 아버지의 술 문제로 인해서 집이 어려운 상황이었고, 어머니도 정신분열 증상으로 약을 먹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심리치료를 14회 정도 한 후에 많이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저희 병원에 병상 체험이라는 수업이 있는데 중환자실의 환자들을 돌보는 것을 통해서 자기 스스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이 익히게 되고, 그래서 본인이 이 체험이 아주 좋았다고 그런 말을 했습니다.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어요

    모든 것이 순조롭게만 흐르는 듯 했다. 하지만 2010년 3월 강릉 중앙고에 진학하였으나 경제적인 이유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자퇴를 하겠다고 말했다.고기영 계장사실 그 얘기를 듣고 걱정을 많이 했어요. 자퇴를 하게 되면 옛날에 만났던 애들 그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되고 결국 또 사고를 칠 확률이 커지고 그런 부분들 때문에 적극 만류를 했죠. 공부를 보충해주기 위해서 보호관찰소 내에 있는 공부방에서 공부를 해보자 처음에는 흥미도 없고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던 기봉이는 점차 공부방에 적응하면서 얼굴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해 상반기 시험에서 반 1등을 하는 커다란 결실을 맺게 되었다.자원봉사 교사 전보다 더 열심히 하려고 했고, 난이도가 있는 수업을 했는데 지치지도 않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그 열의가 더 높아지는 것 같아요. 중앙고등학교 교사 기봉이가 점점 자기 진로를 찾아서 대학을 가겠다고 얘기를 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현재 저희 반에서 뿐만 아니라 저희 과에서 거의 전 과목이 최상위권에 있습니다. (자신의) 본 마음을 빨리 찾았다고 봐야죠. 보호관찰 기간중에 자기 스스로 더 노력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고기영 계장과 기봉이의 성적 많이 오른 것 같던데, 학교 선생님 통해 확인해 보니까!

    "쌤" 저 보호관찰 더 받고 싶어요! 보호관찰 더 받고 싶다고요. 6개월만 더 연장시켜 주세요.판사님한테 편지를 한번 써보자. 보호관찰을 받으면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는 기봉이의 마음은 강릉 지원 소년부 판사에게 전달. 의지를 대견히 여겨 6개월의 보호관찰 기간 연장이라는 이례적인 결정이 내려졌다.기봉이 제가 처음에 보호관찰을 받을때는 안좋은 계기로 보호관찰을 받았지만 여기 와서 프로그램도 많이 참여하고, 공부방도 가게 되고요 많은 도움을 받은 것 같아요. 혼자서 하지 못한 일들, 선생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정도까지 되었으니까 정말 선생님한테 감사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고기영 계장보호관찰을 받는 애들이 보호관찰 선생님들한테 쌤이라고 하거든요. 자기에게 있어서 선생님은 정말로 소중한 사람이라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너무 너무 기분이 좋았고요. "보호관찰이란게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가 있구나"라는 그런…희열…보호관찰 대상자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 자체 그 자체만 있으면 앞으로 제2, 제3의 기봉이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가정과 사회적으로 일반 청소년들과 같은 위치에서 시작할 수 없는 많은 불우한 보호관찰 청소년들. 하지만 그들 곁에는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해주는 범죄예방위원들과 보호관찰관들이 있다. 관심과 열정을 가진 이들이 있어 보호관찰을 받는 청소년들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원봉사 미담사례 쌤! 보호관찰 더 받고 싶어요 자원봉사신청하기
  • 자원봉사 미담사례 선생님 저도 이젠 당당한 고등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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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담하러 왔는데요

    상담을 받고 있는 진경

    법무부 부천보호관찰소 여느 아침처럼 분주한 보호관찰소 일상의 시작이었다.조금은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가 주변을 살피며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건넨다. 강경섭 주임과 진경(가명)이의 "어떻게 왔니?" "상담하러 왔는데요." "진경이 '나사로 청소년집'에서 나왔어?" "네" "거기서 생활은 어땠니?" "그냥…" "남동생도 장애가 있는걸로 나오는데 맞나?" "네 맞아요" "그럴수록 더 잘해야겠다."이곳에 오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문제를 일으켰을 거라 생각을 하고 말을 하였다. 그렇게 진경이는 보호관찰을 시작하였다. 선생님 저도 이젠 당당한 고등학생입니다. (부천, 손진경/17세)



    마음을 열지 못하고

    김포시 통진읍 1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난 진경이는 아버지가 지체장애 3급, 어머니는 1급으로 거동이 불편하여 경제력이 약하였고, 어린 남동생 또한 지체장애와 언어장애로 일반적인 가정이라 하기 힘든 상태였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130만원을 지원 받고 있지만 몸이 불편한 부모님들과 학교를 다니는 3자녀가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현실 이었다. 강경섭 주임 처음 진경이를 보고 여는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길을 걸어서 보호관찰을 받는 학생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활 보고서를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간단하게 적혀 있지만 남들과 다른 진경이의 생활 환경을 보고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진경이는 힘든 가정 환경과 학교 생활에서 오는 이질감을 이기지 못하고 2009년 10월 처음 집을 나가게 되었다.집을 나간 아이들이 그렇듯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비행의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 약 50번의 가출, 친구들과 함께 또래들에게서 물품 및 현금을 갈취하는 등의 비행으로 2010년 9월 법원으로부터 보호관찰과 시설감호위탁처분을 받게 되었다. 시설감호위탁을 받는 나사로의 집 이곳에서 진경이는 6개월 동안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함께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나사로의 집 관리자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진경이도 처음에는 많이 위축되어 있었어요.다른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눈치를 보더라고요.본인이 처음에 여기와서 어떻게 생활을 해야 될 지 갈팡질팡하는 그런 안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상담 교사는 면담 후 진경이의 마음을 다잡아 주기 위해 "청소년 성장캠프" 참여와 "검정고시 지도"를 병행 하기로 했다. 청소년 성장캠프와 검정고시 지도는 진경이에게 조금이나마 자신감을 심어주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게 되는 기회를 주었다. 2011년 3월 시설을 나오게 된 진경이가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귀가 조치가 된 후에 진경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평소 진경이네 가족을 알고 지내던 김포 지구 엄은숙 범죄예방위원에게 전화를 드려 진경이의 현재 상황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하였다. 교육대학원에서 코칭 심리학을 전공하고 김포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엄은숙 범죄예방위원은 진경이의 지도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는 조력자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엄은숙 범죄예방위원 대강은 조금 알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속속들이 알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강 주임님 말씀을 전해 듣고는 마음이 무척 짠 하더라고요.그리고 제가 힘 닿는 곳까지 정서적으로 또 물질적으로 도와줄 것이 있으면 도와주어야겟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엄 위원은 초기 면담 후 진경이의 열악한 가정 환경과 경제 상황을 고려하여, 범죄예방위원 부천지역 협의회를 통해 두 차례에 걸쳐 총 50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하였다.그리고 부모와 가정으로부터 받은 상처에 대한 청소년 심리 치료와 정신과 치료 등을 병행하여 진경이의 상처를 아물게 하도록 노력하였다. 또한 진경이의 검정고시 합격을 위해 1주일에 3회 학습지도를 하였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진경

    처음에는 거부 반응을 보이던 진경이도 언제부터인가 엄 위원의 도움을 받아 들이고,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진경이는 2011년 5월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가 가장 해이해지기 쉽고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엄 위원은 잘 알고 있었다.. 엄 위원은 그런 진경이를 요가학원에 등록을 시켜 정신과 육체의 균형을 찾도록 도와주었고, 보호관찰소에서 운영하는 합창단에 참석하도록 하여 사람들과의 대인 관계 개선에 노력을 하였으며, 김포 교육청과의 상담을 통해 진경이를 김포고등학교에 입학 시킬 수 있었다.




    정신과 육체에 균형을 찾도록

    엄은숙 범죄예방위원 처음에는 좀 많이 힘들었죠. 진경이가 성격이 좀 내성적이라서 말도 잘 안하고 그래서 많이 힘들었는데요. 면담보다는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 진경이 생일날 만나서 밥도 먹고, 또 떡볶이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 많이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2012년 3월 보호관찰소에서 예전과 달라진 진경이를 만날 수 있었다.아직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어두운 모습이 없지는 않았지만 예전 보다는 많이 밝아 지고 조금은 당당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강경섭 주임 우선 보호관찰소에 들어오는 태도에서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조금 자신이 생긴 모습이랄까, 그 나이 또래의 특유의 발랄한 모습도 보이고,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들이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진경이 예전에는 정말 힘들고, 의지 할 사람도 없고,얘기를 나누고 싶어도 나눌 그런 분들이 안계셔서 많이 힘들고 좀 답답한 것도 많았는데,속 마음을 털어놓고 이러다 보니까 답답한 것도 많이 없어지고, 성격도 많이 활발해지고 일단 저를 이렇게 돌봐 주시는 엄은숙 범죄예방위원님, 보호관찰 선생님들, 그런 분들에게 고맙죠.감사하고, 솔직히 제가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렇게 생활을 잘 할 수 있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엄은숙 범죄예방위원 이 아이의 변화를 통해서 지금 만나는 다른 아이들한테도 그렇게 하다 보니까 그 아이도 변화가 오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참 마음이 뿌듯하고 얘한테 준 것보다는, 제가 얘를 통해서 이 일을 하면서, 얻은 것이 훨씬 더 많은 것 같고요, 힘이 닿는데까지 제가 열심히 이 일을 하려고 합니다.정말 행복하고, 또 보람되요.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환자 자신이 받아 들이지 않으면 병을 치료 할 수 없다고 한다.이처럼 아무리 좋은 제도를 실시 하여도 받아들이는 본인이 거부하고 주변의 도움이 없다면 그 제도는 무의미 해진다.제도를 강요하기 전에 먼저 대상자와의 마음을 이어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보호관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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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보다 편한 곳이었어요

    경범의 어릴 적 모습

    김경범 (19세,가명)안양 모처의 헬스 클럽 유독 남들보다 힘겨워 하는 한 아이가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구슬 땀을 흘리는 경범이를 만날 수가 있었다. 작은 관심, 큰 변화 (안양 양승엽 주임) 2010년 11월 모두가 두꺼운 옷을 입을 시기에 얇은 길 팔의 차림에 몸을 가누지 못 할 정도로 뚱뚱한 모습의 경범이를 처음 만났다.양승엽 주임 경범이가 쉼터교사와 함께 왔습니다.처음 만나서 생각하는데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입고 와서 물어봤더니 옷이 없다고 얘기하더라고요(경범이) 얘가 가출을 해서 이렇게 된게 아닌가 생각을 했었습니다. 첫 상담에서 경범이는 집에서 생활을 하지 않고 청소년 쉼터에서 생활을 한다고 했다.그곳이 집보다 편하다는 것이었다.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응당 자기 집이 편할 것인데 쉼터가 더 편하다는 것은 무언가 알지 못할 사연을 가졌을 것이라 생각을 했다. 양승엽 주임은 경범이와 함께 안양청소년 쉼터를 방문 하기로 했다. 안양의 청소년 쉼터 For You의 점심시간 쉼터의 많은 아이들 중에 유독 행복해 많은 양의 식사를 하는 경범이는 다른 아이들 보다 덩치도 더 커 보인다. 안양청소년쉼터 For You 원장님 아무래도 (경범이가) 체중이 많이 나가니까 식탐이 좀 있고(경범이는) 사고를 쳐서 가출을 한 게 아니고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까 자기발로 들어온 독특한 케이스였습니다.경범이의 어머니는 출산 후 집을 나갔고, 경범이가 3살 때 아버지 마저 사고로 잃게 되어 할머니와 큰아버지 슬하에서 자라게 되었다.

    큰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실패하고 온 가족이 지금 사는 12평 작은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빚 독촉과 힘든 생활을 비관한 작은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들어오실 때면 항상 경범이를 탓하며 구타를 일 삼았다. 그나마 생계를 위해 막노동을 하시던 큰아버지는 일을 하던 중 허리를 다쳐 경범이 식구들의 생활은 더욱 비참해져 갔다. 그때부터 경범이는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버릇이 생겼다.식사를 제때 못하다 보니 먹을 수 있을 때 폭식을 하게 되고 그 때문에 몸이 비대하게 되었다. 양승엽 주임은 안타까운 마음에 경범이를 도울 방법을 찾기로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중퇴의 육중하고 둔해 보이는 경범이의 외모로 인해 취직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과천지구 범죄예방협의회 김미숙 위원에게 경범이의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 하였다.김미숙 위원은 흔쾌히 승낙을 하고 경범이를 만나 보겠다며 면담을 하였다.

    트레이너와 운동을 하고 있는 경범

    김미숙 위원님 11월 달 쯤에 보호관찰소 양(승엽)주임님한테 연락을 받았어요. 경범이라는 아이가 있는데 꼭 도와달라고요. 들어오는 외모가 저도 통통하지만 경범이는 뚱뚱했어요. 그 때가 127kg 정도로 알고 있어요. 딱 들어오는데 저 아이가 제가 맡을 애가 아니었으면 싶을 정도로 조금 그랬어요. 경범이는 김미숙 위원의 도움으로 집 근처의 휘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운동 경험이 없는 경범이를 위해 트레이너를 따로 붙이고 비용 전액을 지원해 주었다.127kg의 몸무게를 100Kg까지 빼기 위한 살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김미숙 위원과 경범이의 모습은 여느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과 같다. 경범이의 미래를 걱정 하던 김미숙 위원은 진학 할 수 있는 대학들을 수소문 하던 끝에 한 대학을 찾았다.


    살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자동차 도장을 배울 수 있는 화성 폴리텍 대학에 입학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얼마 전 보호관찰이 끝난 뒤 경범이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양승엽 주임 그 뒤 6월 중순 쯤에 아이(경범이)한테 전화가 왔죠. 깜짝 놀랐어요. 얘 답지 않게 밝은 목소리로 제가 드디어 대학이라는 곳을 들어가게 됩니다.생각지 못했는데… 제대로 말을 못하더라고요. 너무 기뻐하고 그래서 저도 참 가슴이 뿌듯 했습니다. 보호관찰 기간이 끝난 후에도 경범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그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힘든 경범이를 위해 김미숙 위원이 알고 지내던 동료 위원의 가게에 아르바이트를 소개해 주었다.

    대상자의 작은 관심에서 시작된 김미숙 위원과 양승엽 주임의 작은 노력과 헌신 그런 작은 정성이 경범이와 같은 아이들이 새롭게 일어서 나아갈 수 잇는 힘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이다.양승엽 주임 특히 범죄예방위원님들이 애를 도와주는 부분은 솔직히 말 그대로 헌신입니다. 말 그대로 돌아오는거 없이 투자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건 누구나 쉽지 않죠 김미숙 위원님 시간과 경제적인 것 그리고 마음이 조금 더 투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저 한 달에 한번 만나는 일상적인 대화가 아닌 대상자들에게 사랑을 좀 더 주시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저도 앞으로 그렇게 노력 할꺼고요 우리는 주변에서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난다. 왜곡되지 않은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관심과 애정으로 대하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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